- 글쓰기에 정답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서점에 가면 글쓰기에 대한 책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소설 쓰는 법, 시나리오 쓰는 법, 논픽션 쓰는 법, 서평 쓰는 법, 일기 쓰는 법, 논문 쓰는 법, 보고서 쓰는 법, 자기소개서 쓰는 법 등등. 물론 에세이 쓰는 법에 대한 책도 여럿 있어요. 그 말은? 에세이 쓰는 법에 대해서라면 최소한 책 한 권의 분량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실 한 권으로도 부족하다는 뜻이겠죠. 그 많은 책들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테니까요.
말이 나온 김에 에세이 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책 몇 권을 추천하겠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들 위주로 고르면 비비언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 리디아 데이비스의 <형식과 영향력> 같은 책들.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브라이언 딜런의 <에세이즘>, 엘렉 식수의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조지 선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그리고 요나스 메카스의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을 더할 수도 있겠죠.
이 책들은 에세이를 쓰는 기술에 관한 책은 아니에요. 다만 텍스트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글쓰기의 기술을 배울 필요가 없다거나 배울 수 없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고요. 다만 그런 책들은 추천하기 조심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기술을 가르치다 보면 이런 방식은 옳고, 저런 방식은 틀리다는 식으로 흐르기가 쉽잖아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쓰기 꿀팁’들을 생각해보세요. 단문을 써라, 형용사와 부사를 쓰지 마라, 접속사를 줄이고 반복하지 말아라,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 뭐 그런 것들이요. 모두 맞는 말입니다. 동시에 전부 틀린 말이기도 하지요.
모든 글이 그런 것처럼 에세이를 쓴다는 건 단어를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한 문장을 특정한 방식으로 배열함으로써 읽는 사람의 내면에 일정한 효과를 일으키는 일입니다. 따라서 의도하는 효과를 위해 적당한 기술을 선택해서 사용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 만약 제가 단문 위주의 글을 쓴다면 그건 그 글에 속도감과 단순명쾌한 느낌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해서지, 단문을 쓰는 것이 올바른 글쓰기의 방법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쯤에서 다소 뻔한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글쓰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물론 정답이 있는데 제가 아직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요. 하지만 정답을 모른 채로도 15년 가까이 글을 쓰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글을 쓰기 위해 정답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그냥 제가 답 없이 사는 것이거나요…… 아 그래서……
그렇게 책들을 읽다 보면 문득 무언가 쓰고 싶다는,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어느 순간 아기가 말을 내뱉는 순간이 오는 것처럼요. 바로 그때가 책을 잠시 내려놓아야 하는 때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읽어야 하고 배워야 할 게 남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어요. 좋습니다, 그럼 더 읽으셔야죠. 하지만 글쓰기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한 편의 글이고, 그것이 글쓰기에 대한 우리 나름의 답이라는 사실을요. 우리는 그것을 다듬어 좀 더 나은 답으로 만들거나, 그것을 넘어서서 또 다른 답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입니다.